2009/11/15 22:34

자유인 미스터 로봇(The Loser)

        압도적인 키의 조형인간, 헤라클레스의 골격과 근육인 듯 힘차 보이는 미스터 로봇은 요즘 슬프다. 자신을 왜 생각하고 말하는 로봇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설치 기술자가 원망스럽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언덕 위에 자기를 세워 놓게 한 공원 측에게도 불만을 털어놓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자신의 내부 프로그램을 통하여 들어오는 외부의 이야기를 요약하여 기계 턱을 움직여 말하면서 제 자리에서 끊임없이 거대한 팔과 다리를 들썩거리며 걷는다.

        늦가을 바람이 불자 낙엽이 발밑으로 우수수 쓸려간다. 날씨는 점점 싸늘해져서 지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움츠리는데 언덕바지에 홀로 서서 멀리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오늘도 사회적인 논란거리에 대하여 요약된 내용을 그 타이틀의 형식으로 이따금씩 느릿느릿하면서도 낮고 굵은 목소리로 위엄 있게 말한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어(loser) ! "
   
        그 목소리가 웅장하여 가까이서 얼핏 들으면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로봇을 힐긋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없이 섰다가 돌아서기도 하고, 한참 가다가는 다시 뒤돌아보기도 한다. 주요 TV 방송프로그램에 반복되어 나오는 말은 그 횟수에 따라 로봇 자신의 내부프로그램으로 우선순위가 매겨져서 정리 기억되고, 그는 이것을 중요도에 따라 같은 말을 하루에도 무수히 반복하여 음성으로 재출력한다. 이번에는 약간 달리 말한다.

       "키 큰 남자는 루저-어 ! "

        오늘도 이 말을 그는 무수히 반복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때마다 역시 그를 힐긋힐긋 쳐다보기도 하고 못들은 체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조금씩 달리 반응하기 시작한다. 가다가 뒤돌아보면서 험상궂은 얼굴을 하기도 하고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 키 큰 남자가 로봇의 무릎 밑에 바짝 다가와서 쳐다보며 외친다.

       "그제도 어제도 지나치면서 들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 나는 너의 말 때문에 마음이 매우 슬퍼졌다.  너는 여기 서 있기만 하니까 모를 거다 ! 키 큰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 "
       "무엇이-가 불편-합니까? "
        미스터 로봇이 관절을 약간 삐거덕 거리고, 천천히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키가 커서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차를 타고 내리기도 쉽지 않다. 옷가게에 가도 신발을 사려해도 맞는 것이 없다. 아무래도 음식도 많이 먹어야 한다. 침대도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매우 불편하다 ! "
       "나는-도 불편하다. 가을이다. 찬바람이 분다. 춥다. 내일 날씨는 영하, 내일 날씨는 영하 ! "
       "미스터 로봇 ! 왜 엉뚱한 이야기로 나아가나? 나는 네가 한 말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비참해졌다. 왜 자꾸 '키 큰 남자는 루-저'라고 하나 ! "
       "맞아 ! 조금 전에는 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했나 ! 로봇한테서 마음 아픈 소리 듣기는 난생 처음이다. 내 나이 40에... "
        키가 조금 작아 보이는 사람이 가던 길을 되돌아 와서 키 큰 사람의 곁에 다가서며 그렇게 함께 항의한다.

       "40센티미터-나 더 자랄 수 있다아 !"
       "뭐라고? 내가? 어른이 된지가 언제인데 40센티미터나 더 자란다고? 미스터 로봇 ! 아, 나를 희롱하다니, 나는 슬프다아..."
       "아, 춥다. 찬바람이 분다. 누구-라도 꼭 안아주고 싶다. 그런데 나는 허리를 구부릴 수가 없다. 나는 슬프다. 모두 다 나를 쳐다본다. 키가 크다고 감탄-만 한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는다. 내가 울면 따라 운다. 아, 나는 쓸쓸하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왜 여기 있나 !  키 큰 사람은 루저-어 ! "
       "미스터 로봇 ! 너는 끝까지 나를 조롱하고 있다. 어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
        키 큰 사람이 화가 나지만 참아가면서 그렇게 말했다.

        공원관리사무소에는 민원이 제기 되었다. 로봇이 읊조리는 말 가운데 대략 세어본 결과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20분 만에 1번 말하고, '키 큰 남자는 루저'라고 20분 만에 5번이나 말 한다. 그러므로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대략 10시간 동안 합산하면 각각 30번과 150번인데, 이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같은 횟수로 말하든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원관리소장은 급히 로봇의 관리주체로 하여금 문제가 더 확대되기 전에 로봇에게 즉시 사과명령을 내리도록 조치하고, 이러한 사실을 민원인에게 곧바로 회신함으로써 일단 민원을 마무리하였다.

        며칠 후 민원인은 로봇의 사과 말을 듣고자 다시 공원에 나타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로봇은 평상시와는 달리 사과 말은커녕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는 민원회신문을 포켓에 만지작거리면서 공원관리사무소에 찾아가서 소장에게 다시 항의한다. 

       "로봇은 왜 사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이오?"
       "사실은..., 진즉 사과명령을 내렸는데, 로봇이 저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그것은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고 말한 것을 얻어 듣고 저 기계 턱을 그만 꽉 다물어 버린 것 같습니다. "
       "로봇이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말이오? "
       "저 로봇은 생각하고 말합니다. 운영기술진이 로봇인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어렵사리 허가를 받은 후 미세한 회로까지 면밀히 특별 점검했지만 어떤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스스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현재로서는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로봇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찾아서 해주고 로봇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하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사실, 듣고 보면, 로봇의생각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
       "일리가 있다고? 하아 ! 그래요? 그래서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로봇에게 사과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로써, 로봇인간 등록 설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00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이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9조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재에 위헌심판 제청 중에 있다고 합니다. "
       "뭐요? 헌재에? 헌법과 법률의 위임에 따라 사과명령을 했으면 따라야지,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
       "사실 저희도 어쩔 수가 없어서 관할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요. 로봇이 사과명령을 따르게 해 달라고. 오죽해서 거기까지 갔겠습니까?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이 문제뿐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정신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우리 공원을 대상으로 13건이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여기 저렇게 서 있지만, 실질적인 운영주체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 공원이 아닙니다. 그 운영주체도 어쩐 일인지 사과명령 취소를 법원에 청구했답니다. 로봇이 도무지 말을 안들어서 결국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습니다. 결국, 헌재의 결정을 받아서 그에 따라 좋은 말로 하여 로봇이 들으면 좋겠고, 아니면 아마도 우리가 사과명령 취소를 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로봇이 고개를 들려나...?"
       "그러니까..., 양측에서 사과명령에 대하여 소를 제기 했는데, 법원이 판결을 안 하고 헌재에 물었다 이 말입니까?"
       "다들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요사이는 로봇이 힘쓰는 세상입니다. 로봇의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저기 꿈쩍도 안하고 버티고 서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누가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 저 힘센 기계 턱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습니다."

       "키 큰 남자는 루저-어 ! "

        장대같이 키가 큰 미스터 로봇이 그때 갑자기 고개를 크게 한번 들썩 하면서 그렇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그 웅장한 목소리에 놀라 모두 그를 눈여겨 쳐다보면서 그와 눈을 맞추려고 기웃기웃 시선을 달리할 때마다 고개 숙인 미스터 로봇의 이마와 어깨가 가을 석양에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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